2017  년 8  월 23일

통권 제 387호 2014년6월[388호]
  호계삼소
거창 죽림정사 주지 일광 스님
  원제스님의 세계 만행
리우에서 만난 예수
  영지影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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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계삼소 - 정영
   거창 죽림정사 주지 일광 스님

 
볕이 따사로운 오후 죽림정사 마당에 들어서니 함초롬한 여염집만 같다. 위엄을 자랑하지도 마음을 휘어잡지도 않는 이 절집이 마냥 좋아 마당에 한참을 서 있는다. 그러자 여낙낙한 일광 스님이 나와 반가이 낯선 손님을 맞아주신다.
"금년 첫 우전이에요. 먼 길 오셨으니 차부터 드세요."
손수 만드신 생강유과와 곶감 그리고 거창의 봄을 마무리 하는 딸기도 앞에 놓였다. 정갈하고 매끈한 손길에 스님의 마음결이 느껴진다.
"이곳은 제 고향이에요. 여기서 태어나서 자랐으니 빚을 갚는다고 흔연하게 생각하며 삽니다."
죽림정사의 모태는 가천의 심원사다. 합천댐이 개발되면서 수몰지가 되어 은사스님께서 다시 터를 잡은 곳이 바로 이곳 거창 죽림정사다. 그때에 심원사 탑을 이곳으로 이전하고 문짝도 가지고 와서 앉혀 놓았다. 그러니 그 시간이 고스란히 이어져 오고 있는 셈이다.
"제가 다섯 살 때부터 저 탑전에서 놀았어요. 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부처님 품을 떠나서 산 적이 없어요."
친할머니께서 다섯 살 먹은 큰 손녀인 스님을 데리고 심원사에
다니셨단다. 그러던 어느 날 탑전에서 뛰어놀고 있는데 한 보
살님이 보더니 이 아이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절밥을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그 말이 석연치 않아 손녀를 유발상좌로 심원사에 보내셨다. 그날부터 절집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되레 식구들이 출가 안하냐고 물을 정도로 출가의 길은 너무도 당연했다. 허나 막상 출가를 하려니 이런 당연한 마음으로 출가를 해도 되나 싶었다. 그때 마침 <선가귀감>을 읽게 되었다.
'출가하여 스님이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 편하고 한가함을 구해서가 아니며, 따뜻하게 입고 배불리 먹으려는 것도 아니며, 명예와 재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고 죽음을 면하려는 것이며, 번뇌를 끊으려는 것이고, 부처님의 지혜를 이으려는 것이며, 삼계에서 벗어나 중생을 건지기 위해서다.'
"이 구절을 읽고는 눈이 번쩍 뜨여서 망설임 없이 길을 나섰지요. 그 길을 아버지께서 동행하며 응원해주셨어요."
그렇게 출가해 동학사 강원에서 공부하고 다시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했다. 그러고 캐나다 불광사에 서 2년을 보내고 더 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은사 스님께서 거창에 돌아와 소임을 봐주길 청하셨다.
"그땐 공부할 때라서 고향에 오기가 좀 꺼려졌어요. 마을 사람들이 저를 보고 누구네 딸이라며 이름을 부르는 게 마음에서 좀 성가신 거예요. 그런데 이십 년이 지나고 보니 그렇게 이름 부르는 분들도 없거니와 이름을 부른들 마음에 걸림이 하나도 없어요. 지금은 고향에서 이렇게 스님으로 사는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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