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년 6  월 25일

통권 제 183호 1997년6월[184호] 통권 제 185호
  진리의 실천자들
보현보살普賢菩薩
  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
백길 장대 끝에서 한 걸음 더
  유마의 방
불이 不二의 미소
  내 곁의 부처
무심이 되면 관세음보살을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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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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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사회의 선분별善分別
  이달의 이야기
고려대장경의 전산화와 불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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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마의 방 - 목정배
   불이 不二의 미소

 
유마거사는 방에 없었다. 내가 마음먹고 유마거사를 찾아나선 것은 초파일 전날 새벽이었다. 비가 막 그치고 뿌면 새벽 안개가 바람에 날려가는 것이 시원스러워 보였다. 그토록 맑고 싱그러운 첫새벽에 나선 것을 참 다행한 일이라 생각하였다. 마침 새벽 예불을 마치고 난뒤라 마음도 맑았다. 안개비가 간혹 머리카락에 떨어지기도 하였으나 비 맞는다는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자하紫霞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환상에 젖어 들었다. 불국사에 오르는 문 하나가 자하문인지라 불국佛國에 가까이 간다는 희망을 안고 새벽 안개속을 나섰는데 웬일인지 유마거사는 방을 비우고 없었다. 그 빈방에 지욱한 향연이 마음을 안정시켜 주었다. 아마 향불을 살라 놓고 유마거사는 샘물이라도 길으러 갔나 보다. 처마 밑에서 한동안 기다리기로 하였다.
유마거사를 뵙고 한말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었다. 사실 물어 보나 마나한 문제이지만 그래도 오늘은 어쩐지 묻고 싶었다. 세상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물어 보나 마나 한 것이다. 인간이 부질 없는 망상과 욕망에 따라 저지르고 있는 일들을 놓고 그것을 혁파할 수 있는 방도가 있느냐고 묻는것은 뻔한 일이다. 제 스스로 고쳐 갈수 있는 능력을 본래 소유하고 있으면서 그것을 묻는다는 것은 어디에 비겨 보려는 앙징스런 욕망인 것이다.
오계五械를 범하는 일들, 자찬훼타自護毁他의 사건들이 날마다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다. 왜 사람들은 오계를 범하면서도
나는 한 계도 파계하지 아니하였다고 항변하고 변명하는 걸까.
자기만 깨끗하고 다른 사람은 자신을 괴롭히는 괴물이라고 악
람하는 것은 아집의 소행이 아닌가. 이런 것 저런 것을 물어
보려고 여기에 왔다. 그러나 유마의 방은 비어 있었다. 문이
 
개방되어 있되 진정 유마거사는 부재중이다. 부재중이 더 좋은 것일는지도 모른다. 부재가 곧 해답이지 싶었다. 현상이 있음에 만족하는 인간에게 현상 없음이 바로 청정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생각에까지 미치려면 마음의 묘용妙用에 대하여 먼저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마거사와 사리불 사이에 오간 대화 한토막은 퍽 소중하다.
사리불이 어디를 갔다 오던 길이었다. 유마거사가 그를 불러세워 물었다.
“사리불이여,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네, 조용한 아란야에서 선정을 닦고 오는 중입니다.”
“그래요. 선정을 닦는 곳이 따로 있습니까? 선정을 닦는 곳을 따로이 정해 놓는 것은 좀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닌가요. 보시가 도량이요, 인욕이 도량이요, 무량심이 바로 도량인데 선정의 도량을 별도로 찾아다님에 대해서 생각해 보셔야 할 것입니다.”
이 얼마나 명료하고 정확한 말씀인가. 우리도 한번 깊이 생각해 볼일이다.
이 곳은 이러한 환경이기 때문에 공부하는 곳이 될 수 없고,
저 곳은 감히 접근할 수 없는 곳이기에 선정에 들수없다는 식
으로 분별 의식을 드러낸다면, 어디 한 곳 마땅한 곳이 있을수
없다. 시처즉처是處郞處가 되어야 한다. 이것저것 분별지으면
서 망상에 합당한 일만 고루지 말고 한마음을 바르게 부딪치게
하여야 한다. 우리가 선택한다는 것은 다만 아집의 덩어리로
변별하는 것일 뿐이지, 근원적이고 본질적으로 달관투시하는
것이 아니다. 망상에 따른 분별심으로 고루는 것은 망상의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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