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년 1  월 20일

통권 제 202호 1999년1월[203호] 통권 제 204호
  진리의 실천자들
마하목건련摩訶木犍蓮
  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
짚신을 머리 위에 얹고서
  유마의 방
제게 희망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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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하는 일만이 본연의 자세..
  죽비의 소리
선지식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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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불교 무엇을 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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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그릇이 자신을 담지 않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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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마의 방 - 김상영
   제게 희망을 주소서

 
지난 한해 우리는 참으로 어렵고도 쓰라린 나날을 보내야 했다. 쏟아져 나오는 실직자들의 아픔은 결코 다른 사람의 아픔이 아니었으며, 그나마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직장인들 마저 다달이 나오는 월급 봉투에 그저 무한한 감사를 느껴야 했던 서글픈 나날이었다. 누구 때문일까? 무엇 때문일까? 주변 사람들과 숱하게 입씨름도해 보았지만 어느 누구로부터 속 시원한 답을 들을 수 없었던 기억뿐이다.
하지만 세월은 역시 멈추지 않고 흘렀다.
하지만 세월은 역시 멈추지 않고 흘렀다. 다소 짜증스럽고 어느 때보다 더디다는 느낌이 들긴 하였지만, 그래도 세월은 벌써 일 년이라는 장을 바꾸어 놓고 말았다.
새해 새 아침을 맞이하면서 ‘희망’이라는 단어를 새삼스럽게 떠올려 보았다. 지난 일 년 여 동안 우리에게 가장 멀리 있는 것 같으면서도 가장 부여잡고 싶던 단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무엇보다 지난 연말의 조계종단 사태를 지켜보면서 내 머릿 속을 떠나지 않던 단어가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분명 고통 받는 중생에게 무한한 희망의 빛을 던져 주던 분이신데, 그런 부처님 법을 믿고 따르는 승단은 부처님을 대신해 우리 중생에게 희망을 던져 주어야 하는 곳인데… 그런데 지금의 승단은 오히려 중생에게 절망을 안겨 주는 곳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뭐 이런저런 푸념 섞인 생각도 많이 해 보았지만. 그래도 역시
내게 가장 절실한 문제는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을 과연 희망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부처님 은덕으
로 젊은 학인 스님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보낸 세월이 어느덧
 
팔 년 가까이 되어 간다. 내 명함에는 부교수라는 직함이 새겨져 있지만 이 곳에 교수로 부임하고 난 뒤 젊은 스님들과 함께 책을 보는 일은 내 생의 가장 큰 기쁨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한때는 대학 교수라고 하기 부끄러울 만큼 근무 여건에 분심이 일기도 했지만 스님들 앞에 서서 강의를 할 수 있다는 환희심, 언제나 내 직장에 가면 눈 밝은 학인들이 계신다는 무한한 자긍심이 있기에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것이 내 삶의 희망이었으며 곧 내 존재의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지난 연말 조계사 경내에 서있던 내게서 갑자기 희망이라는 기가 모두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고 말았다. 물론 스님들이 돌과 유리조각을 던지고 심지어 화염병까지 출현한 그 광경을 목격한 때문아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절망스러웠던 것은 나와 함께 공부하면서 한국불교의 힘찬 앞날에 대해 꿈을 꾸어 나갔던 그 스님들이 이쪽 저쪽으로 서로 나뉘어 다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종단의 중진 스님들에게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결코 답습하지 말자며 그렇게 굳게 다짐하던 스님들이 어느덧 그 일원이 되어 똑 같은 일을 되풀이하고 있는 그 현장은 내게 큰 절망감으로 다가서고 말았다.
아직도 아픔이 가시지 않은 이번 분규에 대해 나는 어떠한 평가를 내릴만한 위치에 있지 못하다. 설사 그런 위치에 있다고 하더라도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아무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 객관적인 자
세를 유지하는 척하며 결국은 불교를 욕되게 하고 있는 기자들
의 행태가 너무 싫고, 자신의 고고한 불심으로 승단을 향해 무
차별 공격을 퍼붓는듯한 일부 재가자들의 태도도 마음에 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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