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년 8  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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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곁의 부처 - 장휘옥
   무심이 되면 관세음보살을 만날 수 있다

 
관세음보살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보살이다. 한국은 물론 대승불교권의 여러 나라에서 관세음보살이 어느 불, 보살보다 많이 신앙되고 있는 이유는 관세음보살을 신양하면 확실한 영험과 불가사의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세음보살이 어떤 보살인지 확실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은것 같지 않다.
관세음보살에 대해 설하는 것이 「관음경」이다. 「관음경」은 「법희경」 곧 「묘법연화경」의 일부로서, 제25장의 ‘관세음보살보문품’ 이 바로 이 「관음경」에 해당한다. 관세음보살은 본디 ‘정법여래’ 라는 경지가 매우 높은 부처님이었다. 그러나 높은 경지의 부처님으로는 낮은 단계의 중생을 구제할 수 없으므로 일부러 보살이 되어 일체중생의 구제에 나서게 되었다. 이리하여 관세음보살이라는 하화중생下化樂生으로만 사는 보살이 이 세상에 나타나게 되었다고 한다.
관세음보살은 그 용모가 매우 아름답다. 그래서인지 관세음보살을 여성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관세음보살은 남성도 여성도 아니다. 언제나 모든 사람을 구제해 주는 자비의 화신이기 때문에 남성이든 여성이든 필요에 따라 갖가지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관세음보살의 참다운 모습이다. ‘관세음’ 이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세음世音을 관觀한다’ 라는 뜻으로서, 이 세상의 모든 괴로운 소리, 다시 말하면 인간뿐아니라 지옥을 비롯하여 모든 세계 고통의 소리를 다들어 준다는 의미이다. 관세음보살을 관자재보살이라 부르기도 한다. ‘관자재’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세상의 고통받는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자유자재하기 때문에 관자재라 한다.
 
「관음경」을 보면 관세음보살은 중생의 모든 두려움을 없애 주는 무외시보살로서 삼십삼신身으로 응현하며, 일심으로 그 명호를 외우면 화난火難이나 수난水難 등 일곱가지 재난은 물론 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들어준다고 되어 있다.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이 시대에 이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가능하다면 관세음보살은 어떤 때 나타나는 것일까?
당나라 때 본정 선사라는 분이 있었다. 어느날 제자가 ‘어떻게 하면 관세음보살을 볼 수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처處하는 곳마다 무심이 되면 비로소 관세음보살을 볼수 있다’고 한다. 어떤 대상이나 사람을 만나더라도 무심으로 응하면 곧 관세음보살을 볼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무심이란 어디에도 자신의 마음이 머물지 않는 것이다. 무엇인가에 집착하면 그것에 구속되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다. 씨름 경기를 할 때 상대의 어디를 공격해야 할까 생각하면 이미 무심이 아니다. 상대의 어디에도 틈이 있다고 생각한 순간 유심이 된다. 상대의 어디에도 자신의 마음이 머물지 않을 때, 이기거나 진다고 하는 것에도 머물지 않을 때 비로소 무심이 다. 무심은 멍하게 생각이 없는 상태와는 정반대이다. 천지를 껴안는 기력이 온천지에 충만해 온몸이 살아있는 모습, 이 때가 무심의 경지다. 무심의 사람은 일체의 경지를 포용한다. 이 무심의 당체 그 자체를 관음이라 부른다. 따라서 관음은 각 개개인의 당체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관세음보살은 무심이 되어 일심으로 칭명할 때 비로소 응현한다. 일심이 된다는 것은 관세음보살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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