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년 12  월 17일

통권 제 193호 1998년4월[194호] 통권 제 1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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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보살持地菩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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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비의 소리 - 호산
   다시 서원을 세울 때

 
경제학에 관해서 문외한이라고 자처하는 외국의 문학비평가 비비안느 포레스터의 에세이「경제적 공포」란 책이 있다. ꡐ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대량실업 문제가 자유시장 경제의 필연적 산물임을 역설하고 경제 제일주의에 대하여 신랄한 비판을 이끼지 않았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오늘날의 대량 실업사태는 문명사적 변화의 단초로써 이러한 현상은 결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발달의 필연적 결과이며 미래의 절망적 질서라고 주장하고 있다. 예견되는 미래보다 더 나쁜 것은 자명한 예상에도 불구하고 자본가와 정치가들은 이를 감추기에 급급해 교묘한 통계의 조작으로 고용의 재창출에 대한 환상을 지속적으로 유포하여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급기야는 속임수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고 있다. 세간에는 실업과 고물가로 인한 걱정이 많다. 실직 당한 가장은 고개를 숙이고 많은 가정은 파탄의 지경에 서 있다.
모두 열심히 일하며 살아왔지만 그 삶의 결과가 대량실업과 가정의 파탄이란 사실 앞에서 아연실색할 뿐이다. 책임의 소재를 물을 여유조차 없이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의 삶. 그들은 이제 이 맑은 하늘 아래서 고개 숙인 가장이 되어 영영 가정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린 채 거리의 부랑자로 헤매이고 있다. 누구도 보상해 주지 않고 결코 보상 받을 수도 없는 삶의 군상들, 그것은 지금 우리 시대의 가장 아픈 상처가 되어 깊은 신음 소리를 내고 있다.
얼마 전이었다. 기차를 타기 위해서 나갔던 서울역에서 나는
한 중년의 남자를 만났다. 꽤나 얌전하게 생긴 얼굴에 교양이
있어 보이는 사람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스님 , 어디
 
절 좀 소개해 주세요. 그냥 밥이나 먹여 주고 재워 준다면 그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어디 깊은 산중의 절에서 그저 나무나 패고 청소나 할 수 있다면---.“ 반도체 회사에 다니다 정리해고 된 뒤 서울역에서 부랑자로 석달을 떠돌고 있다고 했다. 마혼의 나이에 아이도 아내도 있는 가장이었지만 정리해고 된 뒤 그들을 보기가 민망해서 이렇게 떠돌고 있다는 그의 말끝에는 독한 소주 내음이 강하게 번져 왔다. 술이 아니면 견딜 수 없는 시간을 맞이한 불행한 사람의 얼굴에는 애절함이 눈물처럼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절을 찾고 있었다. 번뇌를 버리고 열반을 향하는 길목에 자리잡은 희망의 절이 아니라 그의 절망과 희망까지 모두 묻어 버리고 피안을 향한 어떠한 대답도 없는 죽음의 절을 찾고 있었다. 그런 절은 차안과 피안 그 어디에도 없다.
쓸쓸하게 돌아서는 그의 등 뒤에 남은 나는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 아픈 시대의 한가운데서 불교는 무엇이며 절집은 또한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중생의 아픔과 함께 할 수 없다면 보살이란 이름은 얼마나 구차스러운 것인가.
이제 우리 출가자들은 깊이 고뇌해야만 한다. 아픔이 산적한 이 사바에서 이 아픔의 끝없는 외면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 아픔의 한가운데로 나아가 그들의 아픔을 끝까지 구원하겠다는 서원을 세워야만 한다. 그러면 보일 것이다. 불교가 아픔을 건너 어떻게 희망에 이르는 다리가 될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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