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년 1  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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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행자시절 - 도연스님
   부처님 전은 명 줄을 잇는 복전이었다.

 
도연스님
그래도 어릴 적 절에 들어와 일찍이 지어놓은 복이 있어 오늘날 해인사 자락에서 부처님을 모시고 산다고 생각하
니 돌아보면 지난 고생이 오히려 감사하다. 그러나 부처님이 누구인지 스님은 무엇을 하며 사는 사람인지 채 알기
도 전에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나의 삶이 결정됐으니 커가면서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고 한동안 정신적
인 방황도 거쳐야만 했다.
내가 절에 들어 온 것은 아홉 살, 타고난 짧은 명
줄을 잇기 위해서였다.
아마 그때가 8살이 되던 해였듯 싶다. 사월 초
파일. 어머니가 다니시던 절에 등공양을 하러 갔었
다. 무슨 말 끝에 나온 얘기인지는 몰라도 아직까
지 기억하는 것은 그 스님의 말씀 한마디였다.
“ 얘는 명이 짧아 절 집에 보내는게 낫겠다 ....”
어린 마음에 내가 일찍 죽는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참으로 공포스런 일이다.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여동생
은 한 노스님이 사는 절로 옮겨지게 되었고 또 얼마
후 한 비구니 스님의 손에 이끌려 홀홀 단신 이 곳
해인사 금선암으로 들어왔다. 당시 나를 보내던 스
 
님은 분명 삼선암에 데려다 주라고 했던 것 같은데
어찌된 일인지 그 비구니 스님은 나를 금선암에 내
려놓고 돌아가셨다. 훗날 알게 된 일이지만 그 비
구니 스님이 삼선암과 개인적인 불편함이 있어 그
곳에 가질 않고 이웃한 이 곳 금선암에 나를 내려
놓게 된 것이었다. 그로부터 여동생과도 헤어졌으
니 그것이 세간 인연의 마지막이 되었다.
살기 위해 들어 선 절 집. 늦가을이었던 듯 싶다.
절마당으로 들어서니 낙엽이 가득했고 어린 마음
이지만 부는 바람따라 나뒹구는 낙엽들을 보며 서
럽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마도 후에 겪게 될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뭔지 모를 불안감을 알고 있었
던 듯 싶다.
그 날 이후 나는 주는 밥도 먹지 않고 말도 않은
채 한 보름정도를 내 멋대로 행동하며 밖으로만 돌
았다. 여기는 내가 살 곳이 아니라는 생각에서였
다. 어찌나 고집이 세었던지 어느 날 밤 노스님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저 고집 때문에 중 되기 글
렀으니 나를 다시 보내라고 하셨다. 그러자 노스님
을 시봉들던 내 은사 스님은 저런 아이가 커서 나
중에 제 몫을 한다시며 그냥 데리고 있자고 청하시
는 얘기를 잠결에 듣게 되었다. 아무리 고집을 부
려도 집에 돌아가기는 틀린 듯 싶었다.
그렇게 힘든 마음으로 며칠을 더 보내던 차에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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