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년 6  월 26일

통권 제 202호 1999년1월[203호] 통권 제 204호
  진리의 실천자들
마하목건련摩訶木犍蓮
  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
짚신을 머리 위에 얹고서
  유마의 방
제게 희망을 주소서
  새해 새아침
참회하는 일만이 본연의 자세..
  죽비의 소리
선지식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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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불교 무엇을 해야 ..
  이달의 이야기
마치 그릇이 자신을 담지 않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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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사회의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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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의 이야기 - 윤영해
   마치 그릇이 자신을 담지 않듯이

 
늙은이는 과거를 추억하며 살고 젊은이는 미래를 전망하며 산다. 불교에 관한 한 현재나 미래에 관한 담론보디는 과거에 관한 그것이 더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 이야기는 반갑다. 인위적인 시간 구분에는 거부감도 없지 않지만, 그렇게라도 우리의 자세와 각오를 새로이 가다듬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일반화된 이야기들
하여튼, 새 세기를 맞으면서 한국불교가 해야 할 일들은 너무나 많아 보인다. 식자층 전문가들은 저마다 전망들을 내어놓는다. 그 다양하고 수많은 전망을 대충 뭉뚱그려 본다면, 대체로 ‘현대화’와 ‘사회화’라는 두 개념으로 압축될 듯하다. 사회화가 세상을 위해서 해야 할 불교의 역할에 대한 성찰이라면, 현대화는 불교가 자신을 위해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성찰이다.
맹목적 과학지상주의의 위험에 대한 새로운 불교적 가치관 제시, 인간을 목적 아닌 수단으로 전락시킴으로써 상실되어 버린 인간성 회복운동, 사회적으로 소외된 외로운 이들을 위한 복지사업에의 헌신, 경제적으로 소외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분배정의의 실현, 정치적으로 소외된 억눌린 사람들을 위한 인권운동, 공해와 환경파괴를 극복할 환경보전운동, 물질적 이익이나 편의를 위해서라면 생명마저 담보하는 물신주의에 맞서는 생명존중 운동, 갈등과 알력과 쟁투를 종식하고 영원한 평화를 위한 노력, 이런 역할들이 불교가 새 시대에 하지 않으면 안될 대 사회적 역할, 곧 사회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승가공동체 구성원의 자질향상을 위한 교육과정의 개혁 및 재정립, 삼보정재(淨財)의 합리적 운용과 투명성 확보, 청빈과 정결貞潔과 정진의 수행생활 확립, 외진 곳에서 자기 위안에만 머물지 않고 세상을 위해 법음을 전파하는 적극적 포교운동, 지식정보 산업시대에 걸 맞는 정보화체제 구축, 구태의연하고 고답적인 의식으로부터 오늘의 현실에 능동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의식의 개혁, 이런 것들이 불교가 새 시대에 하지 않으면 안 될 대내적 할 일, 곧 현대화 또는 개혁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주장들은 이미 수없이 되풀이 된 것 들이다. 그러나 해야 할 일들이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필자는 다음 세 가지가 새 시대를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하고싶다.

불과의 자기 정체성 확립
관용과 포용력을 장점으로 삼는 불교는 새로이 만나는 종교와 문화를 거의 무차별적으로 수용해왔다. 중국에 도착한 불교는 도교와 자연숭배신앙을, 한국에서는 무속을, 일본에서는 신도神道를, 티벳에서는 본교(Bon)를, 동남아시아에서는 낫Nat전통을 받아들였다. 이런 과정에서 붓다의 가르침은 변용되다 못해 심지어 변질되었다. 인도불교는 7세기에 이르러 힌두교의 박티bhakti신앙을 턱없이 수용하다가 자기 정체성을 잃고 힌두교 속으로 함몰되고 말았다.
오늘날의 한국불교는 무엇이 붓다의 가르침이고 무엇이 아닌지
를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 그것은 붓
다가 명백하게 극구 제지한 행위들을 붓다의 이름 아래 버젓이
행하고 있기 때문이며, 너무나 번연히 서로 모순되는 것들을
아무런 반성적 성찰 없이 불교의 이름으로 한꺼번에 쓸어 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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