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년 7  월 19일

통권 제 190호 1998년1월[191호] 통권 제 1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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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영이
이른 오전에 초인종이 울려 누구냐고 물으니 퀵서비스에서 왔다고 했다. 퀵서비스? 매무새를 여미고 문을 열어보니 헬멧을 쓴 청년이 서 있다. 건네주는 봉투를 받아 안으로 들어와 살펴보니 카드 한 장과 손수 노란 한지를 붙여서 만든 작은 상자가 나왔다. 그 때까지도 나는 그게 내게 전달된 선물인 것을 모르고 약간은 의아한 마음이었다. 상자 입구에 단정하게 붙여져 있는 메모 한 장.

“모과 차예요. 삭혔다가 한 달 뒤에 드세요 커피보다 몸에 좋을 거예요!”
-인영-

인영? 아아
나는 인영의 얼굴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우련 가끔 전화 통
화를 했을 뿐이다. 이를테면 인영은 내가 쓴 소설을 읽은 독
자인 셈이다. 이따금 인영처럼 내게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책을 읽고 있다가 읽은 뒤 그들의 소감을 내게 말하면
나는 수화기 이편에서 듣는다. 그렇게 전화를 걸어 온 그들과
내가 직접 만나본 적은 없다. 우린 수화기 이편과 저편에 존재
할 뿐, 서너 번 또는 대여섯 번의 통화로 이어질 때도 있지만
대부분 한두 번의 통화를 끝으로 그들은 또 어디 이 우주의 어
디론 가로 사라져 간다. 내가 인영의 이름을 기억하는 건 인영
이 언제나 전화를 걸어서 저, 인영이에요--- 라고 꼬박꼬박 이
름을 밝히는 탓도 있겠고, 언제부턴가 그녀가 일요일에 전화를
걸어오는 탓도 있다. 혼자 보내는 일요일은 늘 얼마간의 고독
이 지리하고 있다. 그녀가 일요일 오후, 또는 일요일 밤의 적
 
요를 뚫고 내게 전화를 걸어 저, 인영이에요, 라고 말을 걸어 온 게 상당히 오래 되었다. 난 일요일엔 거의 외출을 하지 않는 편이고, 그러니 인영과의 전화는 거의 연결이 되었던 것 같다.
상자를 열어 보니 안에 유리병이 들어있다. 병이 흔들리지 말도록 빈 지리에 얌전하게 신문을 접어 끼어 넣었다. 유리병을 꺼내 보니 잘게잘게 썰어 재 놓은 모과가 노랗게 밀봉되어 있다. 아마도 모과 차를 담그다가 내 생각이 났던 게지. 유리병을 다시 상자 안에 넣고 개봉했던 자리를 다시 테이프로 봉해 카드와 함께 탁자 위에 올려놓는데 인영의 마음이 내 어딘가를 따뜻하게 감싸온다. 그녀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오며 가며 탁자 위에 놓여져 있는 이 모과 차를 볼 적마다 나는 행복 할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스며드는 자책. 나는 이런 정성을 타인에게 베풀어 본 지가 언제지? 이렇게 남을 사랑해 본 지가?

아버지
지난 늦가을부터 시골에 전화를 넣어 아버지와 통화를 하고 나
면 늘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십여 년부터 끌어안고 사는 지병
을 두고 삼 년 전부터 아버지는 다른 병을 하나 더 얻었다. 퇴
행성관절염. 지난 가을부터는 다리 아픈 것이 최악인 모양이었
다. 걸을 수조차 없다 하셨다. 수술을 빼고는 이런저런 조처를
취해 봐도 상태는 나아지지가 않았다. 대체로 말수가 없으신
분이지만 점점 더 말을 잃어 갔다. 수화기 저 끝에서 매사가
다 귀찮은 듯 한없이 저 아래로 잦아드는 목소리, 그래도 뭐라
고 뭐라고 말을 붙이면 결국 끌려 올라오는 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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