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년 1  월 19일

통권 제 329호 2009년8월[330호] 통권 제 3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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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도-두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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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선운사 법만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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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선운사 법만 스님
밤새 작달비 내리더니 새벽녘에야 겨우 그쳤다. 이른 아침, 선운사로 오르는 숲길은 안개를 칭칭 감은 채 입 안 가득 비를 머금고 생생하게 살을 찌우고 있었다. 그렇게 좀 서늘했을까. 구름이 걷히더니 키 큰 나무들 사이로 햇살이 미친 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안개는 자취를 감추고 물기를 담뿍 머금은 더위가 슬슬 등을 타고 올라왔다.
절 마당에 들어서자 만등이 햇살을 받아 벅차게 빛나고 있었다. 만세루에선 사람들이 차를 달이는지 자박자박한 발소리와 조곤조곤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선운사 차를 맛보며 쉬어가라고 개방한 만세루다. 마루에 사람이 스미니 더 절집답다. 일상다반사다.
법만스님은 차를 내주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더운 날, 스님은 간편한 차림으로 한적하니 앉아 몸을 달래고 있었다. 사진을 찍어도 되겠습니까 여쭈니, 차려 입을까요 하신다. 원하는 대로 하시라 하니, 그냥 있는 그대로 편하게 합시다 하신다. 그렇게 스님과의 오후가, 더께도 없이 뒷걸음도 없이 헐렁헐렁 굴러갔다.
출가 후 선방에서 수행만 하던 눈 푸른 수좌라고 했다. 선원 대중 스님들 외호하고 시봉하면서 같은 대중으로 살았다고 했다. 종단 이력도 전혀 없다고 했다. 종회의원을 한 적도 조그마한 말사 주지를 한 적도 없고 총무원에서 일한 적도 없고, 그냥 공부만 하다가, 세납도 적은데 본사 주지를 맡았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절집이 사회와 너무 동떨어져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늘 있었어요. 대중과 가까워져야겠다 싶었고, 모든 걸 공개한 투명한 살림이 필요하다 싶었어요. 그것이 우리 절집의 장래를 위해, 모든 대중을 위해 필요하다 싶어 주지 마음을 냈습니다.”
소신이 있었다. 시간이 걸려도 끝을 보고야 마는 성격이 발심했다. 그렇게 주지 소임 산 지 2년이 넘었다. 종단, 교구 안팎에서 긍정적인 반응들이다. 하지만 그게 쉬웠던 것만은 아니다. 처음엔 스님이 가진 가치관이나 계획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절집에서 꼭 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절집 정서에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보니 시선들이 곱지만은 않았다. 오래 가지 못할 거라고 고개를 돌렸다. 그럴수록 스님은 보다 많은 대중과 소통하고 화합하며 살았다. 더디고 힘들더라도 하나하나 갖춰가며 일을 하는 것이 오히려 더 빠른 것이고, 그래야만 연속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주구장창 계획만 말하기보다 결과물을 보여주니 이젠 많은 스님들이 인정도 하고 참여도 한다.
“무지개가 잡힙니까? 고향 뒷산에 무지개가 뜨면 그걸 잡으려고 산을 몇 개를 넘었어요. 순진했는지 멍청했는지….”
사실, 지금도 누군가의 눈엔 스님이 무지개를 잡으려는 것처럼 보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스님의 손이 무지개에 막 닿기 시작했으니, 누가 봐도 놀랄 일이다.
“살만 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어요. 수행과 복지가 따로 가는 것이 아니에요. 함께 어우러지는 모양새로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21세기엔 문화와 복지가 중심이 되어야 하고, 그럴 때에야 모
든 것이 자연스레 따라온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포교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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