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년 10  월 18일

통권 제 387호 2014년6월[388호]
  호계삼소
거창 죽림정사 주지 일광 스님
  원제스님의 세계 만행
리우에서 만난 예수
  영지影池
서역의 향기 승가사 제일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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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계삼소 - 정영
   거창 죽림정사 주지 일광 스님

 
초파일이면 학교 때 친구들이 와서 등도 달아주고 설거지도 해준단다. 친구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49재도 올리고 마을 어르신들 재도 많이 지내드렸다. 아흔이 넘은 동네 할머니는 스님 친할머니의 친구 분이신데 옛날을 회상하신단다. 다섯 살 때부터 천수경 외고 다니더니 이렇게 스님이 되어 돌아왔다고, 이제 우릴 이렇게 가르쳐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께서도 차 마시러 자주 찾아오신단다.
"저는 이 지역에서 일광스님이 아리나 그냥 '우리 스님'이에요. 다들 '우리 스님'이라고 손녀처럼 딸처럼 친근하게 불러주세요."
마을 신도들은 힘든 일이 있으면 스스럼없이 스님을 찾아온다. 누구네 집 수저 개수까지 알 정도로 그 집의 역사를 다 아니 서로 눈빛만 봐도 마음을 안다. 공감하는 부분이 많으니 소통이 원활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일광 스님은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는 의사다.
"출가해서 고향을 등지고 살 게 아니라 고향에서 지역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것도 재미지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저는 고향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 같이 공부하고 회향하면 되겠다는 마음이 들죠."
스님이 공부를 마치고 죽림정사에 내려왔을 때 은사스님은 연
세가 많아 치매를 앓으셨다. 은사스님을 시봉하는 데에 있어서
나 신도들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싶고 돌아가는 사회현
상을 알아야겠다 싶어서 스님은 다시 동국대에 들어가 사회복
지를 공부했다. 졸업을 하고나자 마침 '거창군 삶의 쉼터'라는
복지관이 개관을 하게 되어 사무국장 소임을 2년 넘게 봤다.
 
일광 스님은 고향이기에 지역 주민의 정서를 아는 것이 많은 부분에 도움이 되었단다. 자리매김하기까지 스님은 큰 공부를 했다며 웃으신다.
"복지관 어르신들이 저를 보면 누구네 딸인지 다 아세요. 학교 선생님들도 무료급식을 하러 오시는데 다 알지요. 오늘도 중학교 2학 때 저한테 빵 사주셨던 사회선생님이 오셨는데 오늘은 제가 빵이랑 자장면을 대접해 드렸어요. 어릴 땐 제가 도움을 받았고 지금은 제가 도움을 드리니 인드라망처럼 연결이 되는 거예요. 인연법이 손에 잡히지요."
그러니 '우리 스님'에게 있어 마을 분들은 모두 '우리 어르신'이고 '우리 선생님'이고 '우리 할머니'시다. 그러니 스님은 한 순간도 나태하게 허투루 살 수가 없단다. 마을 어르신들이 다 일광 스님의 신장님들이시기에.

스님은 포교를 하며 살아오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 신도들이 마음을 들여다보는 공부가 취약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냥 목탁만 치면서 기도하라고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뭐꼬 화두를 주고 본래면목을 보라는 것은 신도들에게 너무도 접근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좀 더 전문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게 뭘까, 내가 해서 행복한 게 뭘까, 신도들도 행복하게 하는 게 뭘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게 명상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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