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행 처 / 해인사
발 행 인 / 선해
주     간 / 학암
편 집 장 / 종현
편집위원 / 심우, 원창, 지묵,
              향록, 여해, 성안,
              성원, 정인

 

현응스님

현응 스님은 해인사강원을 졸업하고 1988년부터 92년까지 월간해인 편집위원, 93년부터 95년까지 월간해인 편집주간을 역임 하였다. 해인사 승가대학 강사와 총무원 기획실장, 불교신문사 사장, 12대 · 13대 중앙종회의원을 거쳐, 불교환경연대 집행위원과 조계종 환경위원을 역임. 현재 해인사 주지로 계신다.

 

원택스님

원택 스님은 1971년 백련암에서 처음으로 성철 큰스님을 만나 평생 마음에 담을 한마디를 해달라는 부탁에 성철스님은 대뜸 절돈 만원(일만배)을 내놓으라고 하셨다. 부처님 앞에 일만 번의 절을 하고서야 겨우 얻은 좌우명은 '속이지 마라' 한마디.  이때가 1972년이다.
혹독한 행자생활을 거쳐 계를 받고 성철스님으로부터 원택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곁에서 20여 년, 또 떠나보내고 난 후 10여 년, 이렇게 30여 년 동안 큰스님을 시봉하며 살고 계신다.

 

향적스님

향적 스님은 1967년 해인사에서 일타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조계종 교육원 교육부장, 해인사 성보박물관장을 역임했다. 조계종 종회 의원인 향적 스님은 현재 불교신문 사장을 맏고있다.
1985년 해인지 주간을 맡으시며 정식으로 문공부 간행물 등록을 마쳤으니 오늘날 해인지의 모태를 만든 장본인 이시다.



종림스님

종림 스님은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를 졸업한 뒤, 해인사 지관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여러 선원에서 수행하였고, 해인사 도서관장으로서 일했으며, 일본 하나조노대학 국제선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공부하였다.1992년에 고려대장경연구소를 설립하여 고려대장경의 전산화 작업을 추진해 오던 끝에 10년 만에 대장경 전산화본 <고려대장경 2000>을 완성하여 내는 큰 성과를 이루었다.
1988년부터 89년까지 해인지 편집장 소임을 맡으면서 사무실을 서울로 이주. 해인편집실 북아현동 시대를 활짝 연 장본인 이시다.


현장스님

현장스님은 1982년 3월 해인강원 포교부를 맡으면서 8면짜리 포교지 해인지를 처음으로 만들었다. 이때의 포교담당스님이 현장스님이다.
최초의 해인지를 창간하신 분이시다.

법연스님
법연스님은 1986년과 87년 해인지 편집장을 지내고 1990년부터 95년까지 해인사 출판부장을 지냈다. 지금은 함양 장춘사 주지스님으로 계신다.

여연스님
여연스님은 1985년부터 92년까지 편집주간을 맡아보시며 해인지 현대화에 힘쓰셨다.

시명스님
시명스님은 1985년부터 1986년까지와 1990년도에 초기 해인지 편집장을 지냈다.
“가야산 해인사” 라는 해인사 안내책자도 처음으로 만들어 일반대중에게 해인사를 알릴수 있는 초석을 마련하셨다.

도각스님
도각스님은 1993년부터 1994년까지 해인지 편집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서울 사자암 주지와 종회의원을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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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8월6일 20시부터 적용된 데이타입니다.